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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in News] 역사 속의 실업 대책-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5-05-20 09:44  | 조회 : 3058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History in News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



◇ 신율 앵커(이하 신율): 취업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30대 청년 실업자 수가 1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9만 5천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실업문제, 자식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죠. 은퇴를 앞둔 아버지 세대도 일자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나라는 잘 살게 되었는데, 일자리는 부족한 현실. 역사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히스토리 인 뉴스. 오늘은 실업문제를 역사의 눈으로 들여다보죠. 오늘도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전우용 교수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양대 동아시아문제연구소 교수(이하 전우용): 네, 안녕하세요.

◇ 신율: 네, 그런데요. 사실 실업이라는 이야기가 전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지, 일단 이거부터 모르겠어요?

◆ 전우용: 실업이라기보다는 무업, 혹은 무토불농, 이런 말로 많이 썼죠. 실업이라는 말 자체가 업이 있다가 업에서 쫒겨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청년실업이라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아예 직업을 못 얻는 케이스는 실업이 아닌 거죠. 직업을 잃는 다는 의미기 아니라 미취업 문제거나, 취업하기 불가능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거죠. 농경사회에서는 실업이라기보다는 일이 없는 거죠. 무위무식, 이런 거죠.

◇ 신율: 그렇죠. 실업이라는 건 취업을 전제로 하는 건데, 직장에 있던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것일텐데요. 그런데 농사를 못 짓는 경우가 어떤 게 있죠?

◆ 전우용: 우선 인구와 토지 간의 비례관계가 깨지는 경우이죠. 예컨대 전쟁이라든지 이런 상황으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못 짓는 경우도 있고, 인구가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나는데 농업 생산력 자체가 발전해서 토지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범위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전보다 적은 인원이 많은 토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된다든가, 이런 상황이면 토지가 수용하지 못하는 인구들이 농사를 못 짓게 되니까, 농촌을 떠나 유이민이 되는 거죠.

◇ 신율: 우리가 흔히 사회주의의 시조라고 한다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데,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쓸 당시에 엔클로저 운동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수익성이 높은 양을 키우기 위해서 농지에다가 양을 키우는 거죠. 그러면서 사람들을 내 쫒고, 그 사람들이 유랑을 하면서 도적으로 변하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저작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그런 식의 문제, 이건 사실 토지와 사람의 불균형은 아니잖아요. 이윤을 쫒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요. 우리나라는 그런 일이 없었나요?

◆ 전우용: 그러니까 엔클로저 운동 뿐만 아니라 토지 경영의 합리화라든가 다각화, 이런 것이 같이 작동했던 거잖아요. 우리의 경우도 대략 17, 18세기에 들어와서 양란의 피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농업생산력이 높아지고, 이러다보니까 사회적으로 생존전략이라고 하는 것이 장자 상속제로 이행한다든가, 이런 변화가 나타나거든요. 그 와중에서 토지를 상속받지 못한 사람들, 소작지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유이하는 사태가 많이 벌어졌죠. 우리도 대략 17, 18세기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 신율: 그런데 사실 이윤을 창출하는데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졌는가에 대해서, 유럽과 자본주의적 맹아에 의해서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요.

◆ 전우용: 범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한데요. 사람의 욕망이 다 그렇죠. 조금이라도 더 얻고 싶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들을 하니까요.

◇ 신율: 그렇다면 요새처럼 실업이라는 건 공장이 형성되고, 직장이 형성되고, 이래야 실업이라는 단어가 적용될 수 있는 거죠. 그런 것은 결국 1920년대, 그때부터라고 볼 수 있나요?

◆ 전우용: 나라가 망했을 때 당장 실업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죠. 1905년부터 일본이 사실상 주권의 많은 부분을 침탈하게 되고, 1910년에 병합을 하죠. 그때 당장 대한제국 정부의 관리들은 거의 대부분 직장에서 쫒겨나죠. 특히 군대가 해산되고요. 직업군인들이 있었으니까요.

◇ 신율: 그런 사람들은 진짜 실업이라는 단어가 적용되는 거죠.

◆ 전우용: 그렇죠. 그리고 1차 세계대전과 3.1운동을 전후해서 일본에서 전후공항, 그리고 1923년 대지진에서 비롯된 진제공항, 이런 공항들이 일어나고 일본 내에서 실업률이 심각해지니까, 일본인들은 자기네 청년들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식민지로 나가라고 부추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으로 들어오게 되면, 한국에서는 또 일자리가 줄어들고, 일본에서 농업이민이라고 들어와서 이쪽 토지를 지배하게 되면, 토지를 잃은 사람이 또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한국인들은 또 일자리를 잃으니까 만주나 이런 쪽으로 다시 건너가고,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조선에 들어왔던 조선인들이 한 80만 명 정도 되는데, 80만 명으로 인해서 자기 땅에 못 살고 외국으로 쫒겨났던 사람들이 한 300만 명 가까이 되거든요. 그런 식이죠. 그게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 먹고 살 방법을 못 구해서 쫒겨난 사람들이니까, 제국주의 시대에는 그렇게 본국의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이용하고, 식민지는 그 모수를 두 배로 받았죠.

◇ 신율: 그런데 솔직히 실업만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 일제 강점기 하에서 보면 일본인 남성 노동자가 1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조선인 여성 노동자는 25만원밖에 못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4분의 1 밖에 안 주면서 그렇게 고생 할 수 밖에 없었다. 남성 노동자도 40만원 정도였고요. 그러니까 실업문제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왜곡시키는 극단에 달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어쨌든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예전에 토지를 잃었거나 이런 사람들에게 왕들이 대책을 세워주기도 했나요?

◆ 전우용: 사후대책이죠. 옛 말에 이런 말이 있죠.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

◇ 신율: 그런데 구해야 되거든요. 가난은 구조의 산물이니까요.

◆ 전우용: 그래서 전국의 가난은 못구하지만, 왕이 있는 왕경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도의 왕도주의적 사상은 있었어요. 그래서 적어도 서울에 들어오면 굶어죽는 일은 면하게 해야 되겠다. 이런 형태로 여러 가지 구제책을 썼죠. 서울 양쪽의 동소문과 서소문 옆에 활인서라는 기관을 두고,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뜻이죠. 굶주린 사람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쉬게 하고, 그리고 나서는 할 수 있는 대책이 없죠. 이제 나가라, 고향으로 돌아가라, 심지어 그 사람들의 원 출신지를 일일이 조사해서, 어느 지역 출신이 많다고 하면 그 지역 지방관을 문책한다거나, 이런 정도였고요. 추우면 폐지를 나눠줘서 덮고 자게 하고, 이런 정도로 추위와 굶주림을 잠시 면하게 한 것이죠.

◇ 신율: 폐지, 종이 덮고 자라고요.

◆ 전우용: 그런데 그거 나눠준 게 어딘데요. 그것도 돈이 드는 일이고요. 어쩌면 전통 문서 중에 관청고 문서가 적게 남은 이유 중에 하나도, 그런 식으로 겨울철에 거지들에게 관청 종이를 나눠주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식의 사후 대책이 조금 있었고요. 궁극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도 쉽게 만들 수는 없었던 부분이죠.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일자릴 대책이라는 것은 세 가지 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일자리를 늘이는 것이고요. 그런데 자기 나라 내에서 일자리를 늘이는 것은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남을 침략하거나 해외 진출을 하거나, 이런 방식이었고요. 두 번째는 인구를 줄이는 것이죠. 전쟁과 전염병이라는 것이 일자리 문제에 대한,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해결책이 되기도 했던 거죠.

◇ 신율: 그건 예나 지금이나, 히틀러가 마지막 수상으로 나갔을 때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게, 실업율 0%이지 않습니까? 전쟁하면서 그거 지켰잖아요.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예전에 토목공사 같은 것 했잖아요. 그런 거 하면 일자리 창출 되는 것 아니에요?

◆ 전우용: 빈민구제사업의 일환으로 토목공사를 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옛날에는 토목공사의 노동력은 요역으로 충당했죠.

◇ 신율: 요역이 뭔가요?

◆ 전우용: 백성들의 노동력을 직접 징발하는 거죠. 그런데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돈을 내게 해서, 그 돈으로 일자리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업들은 이미 18, 19세기에도 있었죠. 일시적이긴 하지만, 정말 일자리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는 형태였겠죠.

◇ 신율: 그 이야기 들으니까 북한이 생각나는데, 북한에도 강제노동으로 학생들 징발하는데요. 그런데 학부형이 내 자식은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돈을 낸다고 해요. 비공식적인 돈이지만요. 그런 비슷한 시스템이 과거에도 있었네요.

◆ 전우용: 그건 어느 사회에나 있죠. 요즘도 사실 민방위 훈련장 가면 심부름 센터에서 오시는 분들 있으시잖아요.

◇ 신율: 그건 걸리면 큰일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런데 어쨌든 과거에는 농경사회에서는 젊은 청년들은 힘 쓰는 일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 전우용: 토지가 적거나 해서 일자리가 사라져버리면 사실 일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합법적인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고요. 전반적으로 보면 불법적인 일자리로 몰려드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도둑이 된다든가, 화적 때가 된다든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대체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회가 혼란스럽게 되는 거죠.

◇ 신율: 그러니까 정상적인 방식으로 살 수가 없는 사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데, 복지가 전혀 없는 사회라면 지금 말씀하신대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먹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 전우용: 그렇죠.

◇ 신율: 우리가 물론 생산양식이 전혀 다른 사회에서 조선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그렇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호구지책은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 전우용: 그걸 떠나서요. 저는 사실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예전처럼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인구를 줄일 수 있는 사회도 아니고, 그러면서 고령화, 개인에게는 축복이지만 사회에게는 재앙인데요. 고령화로 인해서 부양해야 할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더군다나 다른 문제를 보면 선진국의 사례를 보고 배울 수가 있었는데, 이건 우리가 보고 배울 사례가 없어요. 우리가 창조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대처하지 못하면, 앞으로 2~30년 후가 정말 걱정이 됩니다.

◇ 신율: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 전우용: 네, 감사합니다.

◇ 신율: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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