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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역사속 한가위는 어떤 모습?"-강응천 문사철 대표
작성자 : ytnradio
날짜 : 2014-09-02 09:50  | 조회 : 4000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


세대와 시대의 봉우리를 넘어(세시봉) : 강응천 문사철 대표



앵커:
오늘도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강응천 문사철 대표(이하 강은천):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추석에 어디가세요? 고향이 강원도라고 하셨죠?

강응천:
고향은 강원도인데 부모님들도 일찍 올라오셨고. 여기에서 다 돌아가셨으니까 저희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친척집도 방문합니다. 거의 움직이질 않죠.

앵커:
네,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사실 추석하고 설 때 보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들이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추석, 설 때도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고. 최대는 하나밖에 없는 게 최대인데. 어쨌든 민족 대이동, 이정도로 많이 움직이는 것은 언제부터 움직인 겁니까?

강응천: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이 아주 그럴싸한 말 같아요. 예전에는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진짜 그때 움직일 때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고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앵커:
인구상으로 아마 그렇게 되겠죠.

강응천:
우리는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고, 추석하면 이런 말이 떠오르니까 으레 옛날부터 이랬으려니 하는데, 실제로는 6.25 전쟁 이후의 현상이랍니다. 6.25전쟁 이후에 서울이 갑자기 급팽창하고 비대화 하면서 식구들이 나눠지니까, 서울과 시골로 나눠지니까. 그래서 만날 기회도 많지 않으니까 그렇게 한 건데. 그 이전에는 물론 근친을 찾아서 차례야 지냈겠죠.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대규모 이동은 그 이전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앵커:
근데요. 사실 추석 때 이렇게 대규모 귀향 하는 것은 단순하게 축제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강응천:
그렇죠. 축제 때문이 아니라, 추석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그렇게 큰 명절은 아니었지만 이때 귀성이라는 걸 합니다. 귀성은 고향 부모님 선산을 찾아가서 별초도 하고 성묘도 하는 게 있었기 때문에 추석이라는 명절 자체가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 뵙는 명절로 서서히 굳어지게 된 거죠. 그래서 설에는 순수하게 세배를 드리러 가지만 추석 때는 성묘라는 행사와 관련해서 민족 대이동을 낳은 명절로 확산이 된 거죠.

앵커:
그렇죠. 근데 이제, 성묘 뭐 이런 건데, 우리나라는 예매도 예전부터, 귀성열차 예매는 한 두 달 전에 끝난 것 같더라고요. 추석 귀성열차란 것도 있잖아요?

강응천:
추석 귀성열차라는 게 예전에 성묘와 관련해서, 우리는 예전부터 성묘를 많이 갔었으니까 있었다고는 하지만 1921년에 처음으로 추석 특별열차라는 게 등장한다고 합니다. 추석 특별열차가 1921년 이라면 일제 강점기잖아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명절처럼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공휴일도 아니었고. 이때 귀성열차라는 것은 서울역에서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해서 수원의 서호 임시정거장에 사람들을 임시로 내려줬다가 11시 반에 다시 돌아오는 기차였는데 이게 성묘 가는 기차가 아니고 달 구경 하러 다니는, 추석날.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이 추석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고 해요.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그야말로 고향을 방문하는 열차는 1935년에 등장했는데 그때는 성묘객 보다는 방학을 맞아 집에 가는 학생 귀향용으로 열차가 등장했고요. 그러다가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추석이라는 게 민족 대이동의 계기가 됐던 것은 서울이 팽창하던 6.25이후라고 말씀드렸는데 1956년 9월 15일, 그때 추석은 9월 19일이었다고 해요. 나흘 앞두고 추석에 내려갈 임시 열차를 증편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는데.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나흘이나 앞두고도 열차를 증편했는데 추석 열차 예매소에 장사진이 펼쳐지고 서울 빠져나가는 도로교통이 마비되는 지금과 같은 현상이 그때부터 펼쳐졌다고 합니다.

앵커:
그런데 6.25부터, 한국전쟁부터 추석이 그렇게 됐다는 얘긴데 그 이전에는 추석이 그렇게 큰 명절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강응천: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경상도 지역에 사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추석보다도 오히려 단오가 더 큰 명절이었다고 해요.

앵커:
북한도 그렇대요.

강응천:
게다가 일제 때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양력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일본은 아예 음력이라는 걸 쓰질 않으니까. 우리는 병용을 하지만. 그래서 이때 양력으로 하면 추석이 8월 15일에 가서 걸리는데, 음력 8월 15일을 바꾸면 8월 15일은 지금은 광복절 한 가운데, 더울 때 아닙니까? 휴일도 아니었었거든요. 지금도 일본에서 추석은 공휴일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게 음력으로 볼 때는 가을의 한 가운데니까 여러 명절 중 하나로 예전부터 꽃펴왔죠.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추석을 추수감사절의 의미로 많이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이라고 생각하기엔 올해는 추석이 일찍 와서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 9월 중순이나 10월에 추석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때 추수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추수감사절이라고 한다면 가을걷이 다 끝나고 나서 겨울 11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추수감사절이 11월에 있죠. 우리도 예전에 고구려나 부여 같은 나라에서 추수감사절을 제천 행사로 지냈던 것이 대개 12월 다 가서 지낸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추석은 그런 것보다는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성묘의 관행과 관련해서 예전에는 작게, 성묘를 가던 것들이 뒤에 다른 여러 가지 산업화의 요인과 맞물리면서 전체적으로 이때 내려가서 부모님을 찾아뵙는 명절로 굳어져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추석의 역사적 기원은 어떻습니까?

강응천: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추석의 기원이 나와요. 고구려나 백제는 아니고. 고구려 백제가 같은 계통의 관습을 가졌고 신라가 별개였다고 이야기를 보통 하는데. 신라의 유리왕 때, 당시 신라는 경주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는데요. 거기가 6부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녀 두 사람이 6부의 부녀자들을 두 패로 갈라서, 한 달 전부터. 그러니까 음력 7월 15일부터. 길쌈놀이를 시켰답니다. 양쪽에서 길쌈을 열심히 해서, 한 달 돼서 8월 15일 땡 치면 그때까지 성과를 놓고 어느 쪽이 더 잘 했고 많이 만들었는지 내기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진 쪽이 이긴 편에 술 대접도 하고 춤도 추고 구슬프게 노래도 불렀다고 하는데 이걸 신라에서 ‘가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가배가 보통 가운데라는 뜻일 것 같은데요. 가배 중에서도, 한가위이니까 여러 가운데, 계절의 가운데에서도 큰 가운데다, 해서 그때부터 추석을 지내는 풍습이 오래까지 올라간다는 기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문자 많이 보내주고 계신데. 9451님 ‘저는 늘 명절 때 안 움직였는데 시집가고 나서 시댁 가느라고 늘 귀성 전쟁을 치릅니다. 그래도 즐거운 명절이에요.’ 명절 때 차 밀리는 것도 사실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부분이죠. 5515님 ‘힘든 길이지만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손잡고 기차타고 할머니 집 가는 일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저희 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라서 저는 이런 경험을 안 해봐서 참 부럽습니다. 3975님 ‘저희는 추석 때 온 식구 함께 여행으로 대신합니다. 그러고 나니 명절 스트레스가 없어졌어요.’ 이번 추석도 여행가시는 분들 많다고 얘기합니다. 오죽하면 현지에 가서 차례 지내시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내려가시는 얘기를 했는데, 예전에도 추석에 일가 친척들끼리 만났나요?

강응천:
가령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일가 친척들이 다 같은 동네에 살았죠. 대개 동종촌 이라고 해서 같은 성씨들끼리 모여 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친척들이 있다고 해서 아주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는 거고 자기네 동네에서 좀 떨어진 이웃마을로 찾아가는 거였겠죠. 그래서 이때 특히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 의미 있는 사람들이 시집간 딸들이요. 시집간 여자들은 조선시대, 특히 조선 후기로 가면 죽어도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앵커:
저는 제가 사위를 봐서 처갓집 귀신이 되는 건 정말 싫을 것 같아요.

강응천:
그런데 조선 전기 때만 해도 사실 처갓집 귀신이 되는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바뀐 거지. 그런데 친정 어머니를 뵐 수 있는 시기가 없으니까 추석 때 친정어머니를 뵈러간답니다. 그런데 끝까지 가지는 못하고, 서로 중간 지점에서 친정어머니와 시집간 딸이 서로 있는 집 중간에서 만나서 해온 음식을 나눠먹고 회포도 풀고 한다는데 이걸 ‘반보기’라고 한데요. 절반씩 해서 만나서 돌아간다고 해서. 이런 걸 가지고 중로상봉, 반보기라고도 했는데. 그래서 속담에는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라고 할 정도로 추석을 전후로 해서 반보기를 하더라도 자기 부모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날로 예전부터 했고. 그 중 으뜸은 여성들의 친정 나들이였던 것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오늘도 그런 정서가 이어져서 민족대이동이라는 말까지 이어져오는 거겠죠.

앵커:
그러니까 결국 지금도 추석, 설 때 가장 많은 갈등을 겪는 게 뭐냐 하면, 부인되는 분들은 친정 가겠다고 하고 남자는 친가 쪽으로 가겠다는 것도 갈등이거든요? 그리고 순서도 중요합니다. 어디를 먼저 가느냐? 또 어디에서 저녁을 먹느냐? 이런 것 때문에 갈등이 참 많은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도 보면서 딸만 키우는 입장에서 그걸 굉장히 공평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데.

강응천:
우리 자식들의 세대로 가면 많이 달라지겠죠. 민족 대이동이라는 말 자체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요?

앵커:
지금도 상당 부분 부모님들이 올라오시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강응천:
그렇습니다.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된 풍습이고 그 이전에는 없었던 거니까.

앵커:
저는 오늘 진짜 새롭게 배웠어요. 그러면 일본, 중국은 어때요? 설날 같은 경우에는 온 동양권이 다 난리가 나지 않습니까?

강응천:
설날도 일본은 양력밖에 없으니까. 중국은 춘절이 우리보다 더 엄청나지만. 한 달씩 놀지 않습니까? 그리고 중국은 추석은 우리처럼 3일 연휴를 하는데 3일 연휴가 희한하게, 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10월 1일이 중국 국경절 아닙니까? 국경절이 1주일 휴일이에요. 그러니까 국경절과 추석이 잇따라 있을 때는 거의 연휴 대박이 나는 거죠. 열흘 이상. 몇 년 전에 그런 적이 있어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왕창 쏟아져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일본은 양력이니까 아까 말씀드린 대로 8월 15일, 한창 더운, 오봉야스미라고 해서 추석 비슷한 날을 보내는데 휴일도 아니고요. 그 대신에 기업체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8월 15일은 한창 더울 때니까, 여름휴가 삼아서 직원들 쉬게 하는 그런 사례는 있다고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어쨌든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부르는 추석, 이번 주 지나면 연휴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이승환이 부르죠. <가족>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함께 말씀해주신 문사철의 강응천 대표님 감사말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강응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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